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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하니바람] 가을 숲, 그 설레는 속삭임… (펌: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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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한없는 적요 속에 잠기는 계절입니다. 태울 듯 뜨겁던 여름 햇빛이 다정해지면 삼라만상은 묵상에 잠깁니다. 하지만 이때 숲은 부산합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부산함으로 동물 들의 아삭이는 움직임과 식물 향기가 절정을 이룹니다. 가을 숲에서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국화입니다. 여러분은 가을의 대표 꽃인 국화의 꽃이름을 몇가지나 알고 계세요? 우리나라 토종 야생 국화과를 대표하는 꽃은 벌개미취, 구절초, 쑥부쟁이 그리고 감국과 산국 이 다섯가지입니다. 해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어디서고 꽃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지만 들국화엔 이야기들이 풍성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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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설모 김윤섭/<하니바람> 포토그래퍼

  

가을이 되면 숲속 동물들도 사람 못잖게 바빠집니다. 다람쥐, 청설모, 어치들은 도토리를 주워 두꺼운 낙엽 속이나 작은 구덩이 속 창고에 갈무리합니다. 어치란 놈은 목에 달린 도토리주머니에 도토리를 잔뜩 넣고 다니면서 자기만 아는 비밀장소에 숨깁니다. 그런데 기억력이 나빠 숨겨둔 것을 다 찾지 못한답니다. 어치가 잊어버린 도토리는 봄에 싹이 틉니다. 생태계의 종자 번식의 한 방법이죠. 곰 같은 잡식성 짐승, 뱀이나 개구리, 도롱뇽처럼 겨울잠 자는 동물들은 자기 전에 먹이를 잡아먹느라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쁩니다.

숲에서 식물들은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열매를 산짐승, 조류, 그리고 곤충들에게 아낌없이 베푼답니다. 열매의 살(과육)은 먹이로 주고, 대신 씨앗을 똥으로 배출시켜 종자를 퍼뜨리며 똥에서 돋아난 새싹은 똥을 거름 삼아 크니 상부상조라 할 수 있죠.

가을에는 숲속 동물들이 어린 새끼들에게 겨울나기 자활훈련을 시킵니다. 9월 초순, 숲생태 해설을 하러 야생화 단지를 찾았다가 좀처럼 보기 드문 것을 보게 됐습니다. 우람한 팥배나무 줄기를 따라 어미다람쥐와 새끼다람쥐가 건너뛰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새끼가 따라 뛰는데, 조금씩 거리가 먼 가지로 뛰면서 훈련 강도가 세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끼에게 어미 품을 떠나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어미의 지도가 정말 가상했습니다.


  

  

시월이 되면 가을숲도 겨우살이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 숲은 마지막 열정을 쏟아 단장을 합니다. 숲이 벗어던진 낙옆들은 땅에 떨어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곤충들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곤충들은 낙엽속에서 알이나 번데기로 겨울을 납니다. 오래된 낙엽은 밑에서 썩으며 열을 내는 보일러 구실을 하고, 올해 떨어진 낙엽은 따뜻한 이불이 되어 숲 생명들을 보호합니다.

숲의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느라 부산하지만 한편 서로 나눔을 실천합니다. 결실을 나누는 추석이 가까울수록 숲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은 따뜻합니다.

그게 자연의 참 모습입니다. 숲에서 배우는 교훈은 ‘인정을 나눔’입니다. 인정의 나눔은 인간을 향한 끝없는 화해의 손짓입니다.

이번 가을엔 ’화해의 손짓’을 보내보세요.

sdm3477@hanmail.net/〈하니바람〉 리포터

허창무씨는 숲해설가이자 시인. 1993년 월간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어떤 봄날 산에 올라’(93년), ‘선인장’(96년)이 있습니다.


벌개미취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 식물로 학명도 ‘코리안 데이지’(Korean Daisy)입니다. 8월부터 9월까지 연보랏빛 꽃을 매달고 양지바른 숲 가장자리에서, 정원에서 큰 무리를 짓고 삽니다. 워낙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어디서나 잘 퍼지는 풀, 한민족의 민족성을 닮은 풀입니다. 겨울철에도 푸릇푸릇 남아 맨땅을 덮어 살풍경을 막아주고, 땅을 고정시키는 힘이 강해 절개사면이나 척박한 땅에 심으면 토사유출을 막아주는 쓸모 많은 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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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는 여느 들국화보다 큼직한 꽃을 피웁니다. 한반도와 만주 어디에서나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피우므로 통일의 염원을 일깨우는 듯 합니다. 음력 9월 9일이면 아홉마디(九節)가 되는데, 이때 잘라서 말려 약재로 쓴다고 해서 구절초란 이름이 생겼답니다. 약으로는 생리불순, 냉증, 불임증 등 부인병을 다스리는데 쓰고, 술 담글 때 꽃을 넣어 향료로도 쓰입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백설기를 찔 때 위에 얹어 향과 색을 더할 때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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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는 늦가을까지 연보랏빛 꽃송이를 피워 은은한 향기를 뿜습니다. 쑥부쟁이는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깊은 산골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병든 어머니와 동생 열한명을 큰딸이 쑥을 캐러 다니며 먹여살려 사람들이 그녀를 쑥부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쑥부쟁이는 상처 입고 쫓기는 노루를 살려주었습니다. 노루는 은혜를 갚겠다며 사라졌습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구해줬습니다. 잘생긴 청년 나무꾼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뒤 내년 가을 다시 찾아와 사랑을 이루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도 사냥꾼은 오지 않았습니다. 지친 쑥부쟁이 앞에 어느날 구해줬던 노루가 나타났고, 노루는 노란 구슬 세 개를 주며 구슬을 하나씩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세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쑥부쟁이는 첫번째 구슬로 어머니 병을 고쳤고, 두번째 구슬로 사냥꾼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습니다. 착한 쑥부쟁이는 세번째 소원으로 사냥꾼을 돌려보내 준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 그녀가 죽은 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이 뜯어먹을 나물로 다시 태어났다고 슬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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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국화과의 들꽃은 감국과 산국입니다. 산국은 감국보다 인가에서 좀더 멀리 떨어진 곳, 산언덕이나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들국화입니다. 감국과 산국은 국화과의 국화속에 속하는, 말하자면 사촌 간이므로 아주 닮았으나, 꽃은 감국이 산국보다 크고, 모여 있는 꽃차례의 윗부분이 더 평평합니다. 약이 귀하던 시절, 국화주는 고혈압 환자들이 애용했던 약술이었고, 음력 9월 9일에는 국화전을 부쳐 먹기도 했습니다.허창무씨는 숲해설가이자 시인. 1993년 월간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어떤 봄날 산에 올라’(93년), ‘선인장’(96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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