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희망다큐 '우리학교' 영화를 보고

320x100
- 지난 5월에 아이와 함께  다큐영화'우리학교'를 보고 썼던 글입니다.
  이번주 토요일(10/20)에 광명에서도 상영하다니 반갑네요.
회원들이 아이들과 같이 가보면 좋을듯 합니다. 여울각시 -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인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실제생활을 찍은 다큐 영화다.
이 학교는 단지 지식을 배우고 학문을 가르치는 의미의 학교를 넘어서 민족의 정신을
지키고 동포들의 정서적 합일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재일동포 1세들이 공장이었던 곳을 사들여 학교를 만들고 돈을 모아 책상과 의자를 사서 시작한 학교. 연합군이 주둔하던시절 헌병과 경찰이 곤봉과 권총을 차고 학교를 에워싸고 학교문을 닫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에 학생들은 집에도 가지 않고 불침번을 서면서 '여학생'과 학교를 지켰다.
공부는 그 다음이었다. 학부모들이 쌀과 라면과 담요를 모아다 주었다.


그렇게 지켜낸 학교가 한때는 학생수가 200명이어서 북적였으나  학생수가  줄어 이제는
조용한 학교가 되었다.


일본정부와 우익들의 방해로 540개의 학교가 겨우 80개가 남았고 홋카이도에는 ‘우리학교’ 단 1군데다.
지금도 아이들을 죽이겠다는 일본우익들의 전화가 오는 현실에 있다.


신학기가 되어 담임발표시간, 자기 담임이 발표되자 환호를 보낸다.  
특별히 인기있는 선생님이 담임이 된 학년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모든 학년이 자기 담임이 발표될때마다
환호를 하거나 서로 안고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좋은 선생님이었던것이다.

학생수가 적으니 모든 행사를 같이 준비한다.
농구부도 예비후보 없이 선수전원이 5명이어서 부상을 당해도 교체할 선수가 없다.
역도도 최고 기록이 나왔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축구부도 다른학교에 비해 인원과 예산이 턱도 없지만 홋카이도 전체 고등학생 축구대회에 나간다.
결국 지고 말았지만 100%를 발휘한 그들은 정신적 승리자다.  
각자 하늘을 펴다보며 흘리는 눈물들..
다른 학교와 다른 신선한 기운에 이끌려 ‘우리학교’에 온 유일한 일본교사인 축구코치에게서 아이들은 전문적인 축구지도를 받는 행운을 잡는다.  
조선인 학교이니 조선말로 아이들을 지도해야한다며 학생들과 같은반에서 조선말공부를 하는 일본코치도 감동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일반 학교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치다보니 안일해졌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신의나 정이 없다.
풍족하고 여유있고  아쉬운거 없다보니 서로에게 애정도 관심도 없다.
사무적인 관계만 남아 자칫하면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준다.

‘우리학교’는 모든게 부족하다.
학생이 부족하고 교사가 부족하고 힘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고  관심이 부족하고
인가도 못받고 인정도 못받는다.


교사와 학생이 부모자식의 관계가 된다.
서로 부비며 같이 뒹글고 함께 살며 함께 커나간다.
전학년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형제, 자매애로 뭉쳐있다.
초, 중, 고급의 각 학년의 터울이 조화롭다.
그래서  애틋하고 격려하고 뭉치고 감격하고 이래저래 늘 가슴이 뜨겁다.
‘결핍의 힘’이다.
풍요가 놓쳤으나 결핍이 건져올린 끈끈한 정이다.


누구는 말한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겨우 우리말을 쓰는 것이 민족정신이냐고.
그러나 집 앞의 일본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이름을 쓰고 일본인척 섞여 살면 편하다.
그 편함을 벗어버리는 용기, 그 용기는 독립운동의 정신과 버금간다.
치마저고리를 입음으로써 감추었던 자기존재를 드러내고 비로소 당당해지는 아이들.
아직도 조선인이라는 차별을 공공연히 하는 일본에서 치마저고리를 입는 것만으로 대단한 용기이고 우리말을 쓰는 것만으로 충분히 민족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에서 지키는 민족정신과 일본에 살면서 지키는 민족정신의 수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자인터뷰할 때 왜 한국국적을 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싫어
남한대신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남한은 일본과 함께 학교를 핍박했지만 북한은 실질적인 물질후원을 해서 살 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래서 고향은 남조선이나 조국은 북조선이라고 믿는 사람들..


북한에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한참을 조국의 이야기로 조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
조국의 해는 일본의 해와 다르다고 말한다.  ‘빠알갛다.’고.
조국에는 참 고운,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조국사람들의 눈은 빛났고 물질이 주지 못하는 ‘행복’을 알고 있다고도 한다.
  

학년별 합창대회에서 고등부 3학년이 불러 1등을 한 ‘분계선 코스모스’라는 민요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분계선에 예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임진강 기슭에 ..
              남북을 넘나들며 살랑대는 바람에
              설레이기 위해 피어났느냐,
              설레이기 위해 피어났느냐

흰저고리 검은치마를 입고 우리나라 지도를 가운데 세워두고 부르는 노래
“설레이기 위해 피어났느냐~, 설레이기 위해 피어났느냐~”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었다.  


학교행사에는 학생과 학부모뿐만아니라 여러지역의 동포들이 모여
다같이 동포애를 다지는 자리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행사가 된다.

    
        버스타고 전철타고 학교에 가요
        엄마는 길이 멀다고 걱정하시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학교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동무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등교길’이란 노래다.
집에서 가깝고 편한 일본학교를 거부하고 통학하거나
더 멀 경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조선인 학교를 다니는 그들의 의지
학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동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결국 ‘조국’이 그들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 사감교사와 남자사감교사가 결혼을 한다.
식당이 결혼식장이 되고 학생들, 남자교사들, 여자교사들이 각각 축가를 불러준다.
진정으로 새 출발하는 새가정에 축하를 하는 장면은
형식으로 끝나는 우리의 결혼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홍치마 펄럭이며..
오늘의 맹세를 잊지 말고..
그대의 새가정에 축복이..‘


드디어 고급반 졸업식, 이 학교를 떠나 일본사회로 나가는 날이다.
전체 학생들이 12년간 선생님과 생활한 추억을 한명씩 하나씩 목이 메어 읽어나가고,
언제든지 힘들때는 모교를 찾아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여기저기 아쉬움과 감사함과 애틋함의 눈물의 졸업식
이런 졸업식을 우리는 얼마만에 보는가.


모든관계에서 '소통'이 부재한 지금의 우리에게 '우리학교'교사와 학생들의 '소통'은
서로를 얼마나  하나로, 힘있게 묶어주는지를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들의 학교에서 우리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부모들과 아이들이 같이
꼭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 리 학 교’를.

손수건 가지고 가세요.








320x100